2008-2009년 : <HAUTE> <THE GALLERIA>

thwvy 2017.11.29 19:09 read.220

2008~2009 : <HAUTE> 

일부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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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UTE>

HAUTE LIFE

 

화가의 놀이터

커다란 캔버스가 대각선으로 누울 수 있을 만큼 작은 아틀리에 혹은 밤낮 없이 환한 파리의 아틀리에. 물감이 있고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그곳이 정기호 화백이 평생을 놀다 가는 놀이터가 될 것이다. 

 

다보성 갤러리에서 초대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정기호 부부는 계동 옆에 작은 아틀리에를 마련해 머물고 있었다. 파리에 그림을 놓는 것이 불안해 이곳에 작품을 몽땅 옮겨다 놓고 나서도 여전히 쉬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다. 정기호 화백은 한옥 사이를 비집고 난 좁은 골목을 산책하면서 작가는 좋은 영감을 받고 있는 중이라고 좋아했다. 만일 서른 두 살에 이미 머리가 하얗게 새어 버린 이 화가를 다른 이에게 소개하라고 하면 무엇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평생 그림만 그렸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고, 그저 천진난만한 예술가라고 하기에도 설명이 충분치 못하다. 18세부터 50년 넘게, 그것도 하루에 8~10시간씩 그림만 그린 화가라고 한들 아무도 쉽게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정기호 화백은 그를 아는 사람들이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그저 ‘재불화가 정기호’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갤러리에 들어서자 그의 아내 조경석씨가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는다는 지난 작품들을 들고 와 하나 하나 설명을 해 준다. “이건 16살에 한국에서 겪은 6.25에 대한 참상을 그린 거예요. 이건 하다 하다 캔버스도 없고 그릴 물감도 없을 때 다 쓴 물감 튜브를 찢어 송곳으로 그린 그림이지요. 사진으로 보면 크지만 실제로는 손바닥보다 작은 것들인데 총 18점이 있었고 지금은 11점이 남아 있어요. 이건 2002년도에 그린 180호 되는 그림이에요.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이 사람이 이걸 그리면서 엉엉 울었어요. 그 감정을 주체하지를 못해서. 우리가 파리에 가서 어렵게 살았잖아요. 물감 사는 것에만 돈을 쓰다 보니 그 흔한 램프 하나가 없었어요. 그래서 어느 날 이케아에 가서 비싸지 않은 램프 하나를 사 왔어요. 그랬더니 이 사람이 그림에 이렇게 램프를 그려 넣었네요? 이 삼각형 얼굴은 2000년에 이이 얼굴이 돌아갔을 때에요. 이 분은 그 와중에서 얼굴을 싸매고 나가서 그림을 그렸죠. 그때 그린 그림이라서 삼각형 얼굴에 눈이 하나, 입이 하나예요. 언젠가는 3일 동안 딸꾹질이 멈추질 않는 거에요. 그래서 병원에 갔지요? 그랬더니 횡경막에 이상이 생겼다고 하는 거에요. 의사가 나에게 물어요. ‘숨을 쉬는 것에 문제가 있냐’고요. 그게 이 그림 때문이에요. 드로잉인데 미로처럼 안을 채워 넣었죠. 이 선이 한 번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한 달음이에요. 이걸 그리느라 숨을 참고 있어서 그렇게 딸꾹질을 했었던 거였어요.” 

 

정기호 화백은 오랜 시간 자신의 그림을 부인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심지어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문에다 못질을 해 놓고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길을 나섰다고 한다. 부인에게도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째서 그림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화백은 “보여주면 마음이 텅 비어.”라고 대답했다. 그런 그가 오랜 봉인을 풀고 15평 아틀리에의 문을 열어 그림을 볼 수 있게 된 이는 평론가 유준상이다. 그는 화백의 추상화를 보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그에게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고 물었다. 정기호 화백은 1938년 일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중퇴한 뒤, 그림에만 몰두해왔다. 미술에 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더니 물은 이가 도리어 거짓말 말라고 질타를 했다고 했다. 그는 일본에서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 정착해 살면서 ‘그림에 소질이 있다’고 말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기억하고 기뻐하며 줄곧 그림을 그렸다. 전쟁 후에 여력이 없는 집에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받을 길이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다 군대에 가서는 얼마 되지 않은 군인 월급을 모아 물감 하나를 건져 제대를 했다. 돈을 벌기 위해 막노동과 거리에서의 온갖 장사를 벌이며 20일 일하고 10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이 이어졌고 그러다 줄곧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67년부터다. “나는 맨날 그림만 그리죠. 그림을 그리는 순간에는 배도 고프지 않고, 잠도 오지 않고, 피곤하지도 않아요. 나는 긴장이 풀어질까 봐 줄곧 서서 10시간을 그리거든요. 지치면 잠깐 잠들고 일어나면 다시 그림만 그리는 거예요.” 그러다 1972년에는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었다가 회복하는데 석 달이 걸렸다고 한다. 이 시기에 그의 그림은 추상을 거쳐 구상과 비구상을 넘나들고 여성미와 신비감을 표현하기 시작했고 황소가 등장했다. 

 

“나는 파리가 참 좋아요. 대부분 한국에서 온 가난한 미술가들은 낮에 돈을 벌고 밤에 그림을 그려요. 그러면 하루에 3~4시간을 그릴 수 있어요. 그에 비하면 나는 행운아에요. 24시간 그림을 그려도 되니까. 파리에 와서 고생을 할 새도 없었어요. 불어는 아내가 배우고 전시회를 연결하는 것도 아내의 몫이고 나는 그냥 그림만. 밤 1시건 2시건 일어나서 그림을 그리는데 미친 듯이 그림을 그리던 어느 때는 하루에 1점씩도 그렸어요. 사람도 안 만나고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고.”라고 말하는 정기호 화백 옆에서 아내는 그의 말을 놓치지 않고 듣는다. 그러다 ‘그의 이력이 작품보다 앞서 흥미거리로 전락할까 우려되니 꼭 화백의 미술 세계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달라’고 연신 부탁을 했다. 집에 양식이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그저 그림만 그리는 남편, 아내가 제대로 먹지 못해서 병이 들어도 그는 늘 그림이 먼저인, 태생이 화가인 사람이었다. 전시를 열고도 그림을 파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 그림은 고스란히 아틀리에로 되돌아 오곤 했고, 돈이 있어야 하니 한 점만 팔자고 하면 한동안 아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내 조경석씨도 그를 만나기 전에는 그림을 그렸었다. 다만, 정기호 화백을 뒷바라지하면서 점차 그림과 멀어졌고 아예 잊혀졌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내가 없었다면 정기호 화백은 지금처럼 건강하게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을 거였다. 화백의 스케치북 안에는 스케치한 아내가 있다. 안경을 쓴 옆 모습을 쉬지 않고 거의 한 번에 빠르게 그려낸 그림. 정기호 화백과 그의 그림, 아내를 만나고 있으면 이것이 현실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마치 영화라고 해도 좋을 화가의 일생. 그 화가는 그림 이야기만 나오면 눈에서 빛이 난다. 

 

“나는 직관적으로 매우 빨리 그림을 그려요. 한창 그림을 많이 그릴 때에는 정말 좋은 작품들을 많이 남길 수 있었는데 그때의 그림들은 하나같이 사인이 없어요. 내게 그림을 빨리 그리고 나서 버리는 것이 있냐고 묻는데, 하나도 버리지 않아요. 어떤 단계에 와서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처음부터 그랬던 거고. 나는 그저 그림을 많이 그리는 사람이에요. 누구에게서 배운 적도 없는. 다만, 스승을 대라면 톨스토이가 있겠지요. 나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곤 했는데 톨스토이가 ‘인생’과 ‘예술’에 대한 부분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가가 되려면 한 문장을 가지고 열 가지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죠. 그리고 화가는 선을 많이 그어서 자기 선을 갖고, 많이 칠해서 자기 색을 가질 수 있다고 하죠. 나는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아침부터 새벽까지 정신 없이 그림을 그렸어요. 그때 그린 그림들이 사인이 없는 것들이고, 3개월 간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었던 것도 그때예요. 3년 동안 그린 그림을 나중에 세어보니 502점이나 돼요. 3번의 전시를 하고도 그림이 남을 만큼. 무척 알찬 그림들을 그렸었지요.” 지금의 환한 그림들은 머물고 있는 파리에서 좀 더 확고해졌다.  파리는 그의 그림의 고향이자 그가 좋아하는 도시다. 그림을 하나 사기 위해 온 가족이 함께 의논하고 고민하고, 유명세가 없는 작가라도 그저 그림만 좋다면 그 그림에 반해서 기쁘게 사 들고 화랑을 나서는 곳. 정기호 화백은 1995년에 파리의 에르에테에서 전시를 한 뒤 정착해버렸다. 그리고 현재 파리 생토노레 거리에 있는 ‘갤러리 아르쿠(Artcour)’의 전속 작가이자 프랑스 파리 국립 미술협회 회원과 파리 국립미술전 영구회원으로 있다. 

 

그는 한때 영감을 좀 거두어 달라고 생각할 정도로 쉴 새 없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뿌리치지 못하고 피곤해하던 때, 아내는 환한 아틀리에 한 쪽에서 눈을 가리고 잠이 들곤 했다. 파리가 암만 좋다고 해도 점차 그림에 소나무, 한국의 산이 등장하는 화백의 그림. 그리워하던 한국에 돌아와 새로운 영감들을 얻고 가려는 참이다. 항상 만족스러움을 채우지 않고, 늘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는 것. 그의 머리 속은 늘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꽉 차 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생을 그림만 그리고 살아온 화가는 사실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림을 그려서 그림을 깨우치고 외롭고 고단하게 자신의 길을 찾고 돈에도 무심하며 그림만 알아준다면 그걸로 그만인 아이 같은 화가다.

 

‘정기호의 천진한 놀이세계’라 이름 붙인 이번 초대전은 정기호 화백의 그림 100여 점이 전시됐다. 천진한 화가, 천진한 그림. 그에게 놀이이자 일생의 화두가 되는 그림이 여력이 되는 날까지 그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서 늙지도 않는 얼굴, 파리에서 차 값 2유로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정기호 화백의 그림이 평단의 호오를 떠나 그저 행복할 뿐이다. 그는 행복하고, 그림은 천진난만하며 인생은 놀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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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LLERIA> 10월호 

INTERVIEW

 

풍요롭고 수미한 진실

 음악을 들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니?’라고 물어도 그것은 질문이 아니다주제가  원인방식이  원인이다 작품이 그렇게 나타나는 것은 그녀가 그렇게 외쳤고방식을 가졌고 작업실에서 노동을 했고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연필로 그림을 그리잖아요 번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덧그리는 방식으로나는 주로 밤에 작업을 많이 하는데한밤중에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조용한 사위에 나의 연필 소리만이 슥슥슥 하고 들려요 때까지도 귓가에 계속 슥슥슥 거릴 정도로그림 그리는데 몰입하고 있으면 내가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모르는 기호로 내가  적고 있다는 생각이  때도 있어요혹은 어떨   손이  영혼에  보이려고 한다는 느낌 손이 노력하면  영혼이  손에 작업에  많은 힘을 실어주는  같은 느낌도 들지요.” 유난히 축축한 북한산  평창동 작업실에서 도윤희는 제습기 다섯 대를 돌려가며 그림을 그린다그곳이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내는 그녀만의 공간이다사실개인 전시를 앞두고 그녀를  작업실에서 만나 보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그게 마음에 걸렸던지 그녀가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나의 생각은 무척 내밀해요진실하고 솔직하고깊은 곳을 성찰하는 것이 나의 작업 방식이에요내가   이야기를 하는지가 나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하죠그러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나를 소중하게  열고 있는 작업실이란 공간은 정말 프라이빗해요그래서 그걸 보여주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나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에심지어 전시를 준비할 때조차 작업 프로세스를 보여주지 않아요깍쟁이라서 그런  절대 아니에요어쩌면  벗는   편할  몰라그러다가 전시를 하게 되면 전시장에서  것을  열어 보여줘야 하잖아요모든 코드를 전복해야 하는 순간인데그때가 조금 괴로워요한동안 어쩔 줄을 몰라요.” 도윤희의 작품은 지층과 화석을 거쳐 세포로 연결됐다세포가 모여 커다란 꽃을 만들고바람에 날리는  묘연하다여러  덧발라진 바니쉬색깔이라 하기엔 관념이 뒤섞여  천연의 내면을 발색하는 그녀의 그림들작업실에서 마치 명상을 하듯이일기를 쓰듯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고 들여다보고 위로를 받기도 하며 길게는 2년의 시간을 들여 작품은 완성된다. 

 

도윤희 작가를 만난 곳은 주한 스위스 대사관 주재로 아리엘 루이즈  알타바(Arial Ruiz I Altaba) 함께 공동 전시를 하던 국제교류센터 문화재단이었다그녀와 함께 전시하는 아리엘 루이즈  알타바는 의학교수이자 과학자이자 예술가다전시의 타이틀은 ‘Genesis’,  작가는 아마도 같은 지점에서 세포를 보고 있다아리엘 루이즈  알타바는 현미경으로 보여지는 세포에 심상을 부여하고 도윤희 역시 세포를 통해 천착한 시간과 작은 단위에서 우주적으로 팽창하는 탐미를 느끼고 진실을 발견한다그녀는 이것을 ‘아름다움이라는 간명한 형용사 하나로 응축한다. “알타바를 만났을 때에도 함께 같은 것을 보는 느낌을 받았고소통하는 듯한 개운함을 느꼈어요언젠가 소통의 지점인 세포에서 아름다움과 진실은 동질의 개념이라고  적이 있어요알타바도 아름다움은 진실이고진실은 아름다움이라고 하더라고요궁극의 진실은 같은데 방식이 다른  재미있어요나는 진정한 아름다움무엇을 기억하고 망각하는지본질적인 기쁨과 슬픔에 대해 생각해요그러다 시간의 천착이라는 개념으로부터 아름다운 진실을 발견했고요오래  소재는 오래된 도자기가구나무 표면이었어요오래  책을 들췄을  나는 냄새와 같은 그러다 지층과 늪을 거쳐 화석으로 넘어갔어요모두  시간의 천착을 통해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했는데그것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고 어떤 배후에 숨겨져 있는 소재들이죠우리가 놓치는 가려져 있는 것들이랄까정말로 나를 ‘터칭하는 내게  닿는 것은 그렇게 숨겨져 있었어요그러다 세포를 발견한 거예요.” 도윤희의 관점은 미시적인 것에서 조금  관조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중이다산을 아주 멀리서 들여다보거나계속적으로 흐르는 강을  멀리서 바라보는 식의 변화된 작가의 그리고 그림은 점점  커졌다이유를 물으면, ‘작업실이 커졌다 했다. “모든 조건과 상황이 나를 만들어요작업실을 새로 만들었는데 전보다  커요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변할 때도 작품에 영향을 미쳐요가려는 지점은 하나지만 주어지는 상황은  달라지는데이를테면 어떤 때는 세상이 나를 받아주지 않는  같다가  어떤 시기에는 세상이 나를 마구 초대해주는  같은 때도 있잖아요미시적인 것에서 관조적인 것으로는 나이를 먹는 것도 영향이 있겠죠.” 작업실 문이 닫히면 도윤희는 지구에서 가장 자유롭다그리고  작업실 안에서 그림과 작가가 공생한다그림을 그리는 것은 육체노동 같고정신은 말끔해진다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작업실에 들어와  기운 안에 섞이면 위로를 받는  같다고 했다작가를 보호해주는 그녀의 그림때로는 ‘작가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지탱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가장 든든한 아타 

 

작가는 지난해 세계 최고의 화랑 가운데 하나인 스위스 바젤의 갤러리 바이엘러에서개인전을 했었다에른스트 바이엘러는 스위스 바젤을 세계 최고의 아트페어가 열리는 현대 미술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인물이고도윤희는 이곳에서 개인전을  최초의 아시아 작가였다그녀는 분명 기량 있고스스로를 돌보며 전진한다주한 스위스 대사관 주재의 공동 전시를 끝내고 오는 가을에는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커다란 전시장에  그림들을 걸어놓을 거라고 했다. ‘보편성이 작가에게는 소통이고터칭이 없으면 그것은 그저 저널이라던 그녀가  십년 백년 뒤에도 컨템퍼러리하고 유효한 그림을 남겨줄  있으면 한다그것의 기한은 ‘안다 것과 동질성을 갖는 ‘아름다움 인류가 지향하고 있는 동안 무한히어쩌면 아름다움이란 가치가 유효할 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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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ALLERIA> 3월호 

ARCHITECTURE 

 

건축의 미래

생태건축에 대해 알고 있는가살고 있는 집이 유기체나 다름 없는 것이라 생각해   있는가혹은 포스트 타워가 첨단 빌딩이라는  알고 있는가건축가만 알고 우리는 모르는 ‘미래형 건축 대한 맛보기  보고서 

 

지난 연말신세계 백화점 본점 맞은편에 마징가 제트 빌딩이 공사를 끝마쳤다멀리는 ‘M’ 혹은 깊이 파인 ‘V’ 곡선을 그리고 있는  빌딩은 단지 ‘마징가 제트가 나올  같아서’ 마징가 제트 빌딩이란 별칭이 붙었다실제로 마징가 제트가 나오는 이벤트 따위는 기대할 수도 없는  건축물의 정식 명칭은 ‘포스트 타워(Pos tower)’. 공공 건물에 마징가 제트란 깜찍한 별칭이라니일단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자리한빌딩으로서 도시 경관 차원에서만큼은 서울 시민들로부터 낙제점은 면한  같아 보인다자하 하디드가 동대문을 디자인하게  이후로서울 시장이 ‘디자인 서울 공언한 이후로는 공공 건축물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이 지대해져 있는 와중이었기에 반응이 궁금했던 포스트 타워는 크게 주목을 받거나 도마 위에 오르진 않았다하지만 너무도 조용히 명동 한복판에 V자를 그리며 나타난 새로운 빌딩에는 한번쯤 주목할만한 건축적 미래가 숨어 있다. 

 

포스트 타워는 ‘첨단 빌딩’ 인증을 받은 건축물이다지열을 이용해 건물 내에 온수를 공급하고 지하 160m 깊이에 5개의 관을 묻어 지하수를 흐르게  다음냉난방으로 활용하고 있다거기에  개의 옥상에는 태양광 전지판이 있어 에너지를 모아 불을 밝힐  있도록 했다뜨거운 여름이면 창가에 햇살 차단용 스크린이 자동으로 내려오고 차량 번호판을 컴퓨터가 인식해 주차장을 자동 안내해 주는 시스템도 도입했다그래서 친환경 건축물 최우수 등급을 받고정보통신  등급을향후에도 발전된 시스템을 자유롭게 추가 설치하고 도입할  있도록  것에서는 인텔리전트 1등급을 인증 받았다이러한 건축기술적 사실이 보여주는 포스트 타워는 상징적인 결과물이고 ‘첨단 빌딩 ‘친환경 건물 표방해 ‘미래형 건축 들여다   있는 단초다 

 

미래 건축의 방향을 함축해서 듣는 것을 기대한다면이에 대해 묻는 것과 대답하는 것조차 무모하고 섣부르다미술사가  줌에 들어올  없는 것처럼 인류와 궤를 같이  건축의 역사와 미래 역시 단순하지 않다하지만 미래는 아니어도 내일의 건축이 어떤 방향이 될지 궁금한 최근 뤼미에르 갤러리를 작업한 구만재 소장에게 물었다그는 ‘미래형 건축은 어떤 개념의 표방이 아니라 다분화  것이다하지만 미래형 주택이라고 생각한다면이런 것은 확실해 보인다벽과 바닥천장의 구분이 모호해진다는 벽은 벽이고 바닥은  이상 바닥이 아니다아주 오래  베르너 팬톤이 주장했던 것처럼 쿨하스(Remment Koolhaas) 건축물처럼 층별 구분이 없어지고 공간이 확장되어 외관과 내관이 얽힌 상태 같은 이라고 한다거기에 미래 건축에 대해  가지  추가한다면, ‘ 꼬르뷔제(Charles-Edouard Jeanneret) 스타일이 지금 사라진 것이 아니란 거다어쩌면 ‘발전이라는  자체가 우스운 것일지도 모른다변화하거나 시대 흐름이 그런 것일 뿐이다사실 초가집이나 기와집을 찾는 이들이 지금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어떤 흐름은 삶의 조건이 맞춰가지 못해 바뀌는 것일 뿐이다.’라고 정리했다. 

 

미래를 논하기 전에지금 건축의 방향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포스트 타워처럼 생태(환경건축에 대한 고심이 지속되고 있는 중이란 것은 확실하다적어도  생태건축이란, 1970년대 이후 꾸준한 건축가들의 고심거리가 되고 있다그럴  밖에 없는 것이매해 에너지 소비량이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 와중이고  증가세를(말도 안되게  겨우 1% 증가 추세로만 계산해도 석유나 석탄천연가스등의 자원은 향후 80  만에 고갈이다그래서 생태 건축이란 자연생태계의 일부로서 환경오염 없이 자연자원과 에너지를 활용하는  초점을 맞춘다독일과 네덜란드스웨덴 등이 유독 환경오염에 대한  많은 고심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며칠 신문지상에 보도되었던 ‘아스팔트 지열을 이용해 아파트 난방을 하는’ 이들도 네덜란드였다. 

2000 하노버 엑스포 네덜란드에서는 세계가 주목하는 건축물이 선보였다샌드위치처럼 수직 형태를 가진 생태학적 건물이었다네덜란드 설계집단 MVRDV에서 내놓은 것으로 델프트 공대 건축학과 출신 3인으로 구성된 ‘현대적 경향의 총아 선보인 건축물이다 생태학적 건물은 옥상층의 프로펠러를 통해 풍력 발전된 동력으로 하층의 물을 끌어올리고 4층의 숲에 물은  다음 숲을 통해 건물 이산화탄소와 열을 정화하며내려간 물은 다시 저층의 수공간으로 모이게 된다 그대로 ‘생태 타워’, 수평적인 것에서 수직으로그리고 생태 그대로가 옮겨온자연 친화적 빌딩이다 누벨(Jean Nouvel) 아랍세계문화원 역시 카메라 렌즈와 같은 조리개가 창에 설치되어 건물에 들어오는 광량을 조절한다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자연친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포스트 타워와 마찬가지로 기술적이고도 자연친화적인 건축물이다하지만 마치 뻔한 영화의 결말처럼 미래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로부터 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미래의 답은 과거에 있어요나라면 한국 전통건축의 경제적이고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에너지 효율 면에서 월등한 면을 접목하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어요바닥은 공중에  있는 형태라 습기도 올라오지 않아요.앞마당은 덥고나무가 심어진 뒤뜰은 서늘해서 신선한 바람이 생겨나지요재료만으로도 오묘해요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지붕에는 엄청난 흙이 들어가 기와를 받치고 있지요그러니 지붕 무게가 얼마나 무겁겠어요기와는 가끔 보수를 해줘야 하지요 불편하겠죠하지만 불편함으로 이해하지 말고 끊임없이 손을 대고 가꿔주는 ‘유기체 이해하는  어때요핸드폰처럼 문제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집이나 빌딩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 구만재 소장의 말처럼 인간이 환경과 공존하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옥도 미래형 건축이다자연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직설적이지 않고   간접적이어야 한다는 건축과 건축 디자인생태건축과 미래형 건축의 미래다. 

 

종이로 건물을 짓는 시게루 (Shigeru ban)에게 화장지 디자인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그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들었는데결과는 평범한 두루마리 화장지가 아닌 네모 심지를 가진 모양새였다지금의 화장지는 지금도 충분히 편리해서 발전의 여지가 없고 네모 심지 화장지는 사용하기 불편하여 상용화될리 만무하다생각해보면동그라미처럼 제대로 돌지 않는 심지는 턱턱거리게  것이었다하지만 그것에 시게루 반의 의도가 숨어 있다그는 우리가 턱턱거리며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장지를 쓰면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를필요 이상으로 낭비되는 화장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이것은 건축가가 생각할  있는 환경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다그들이 환경에 접근할  있는 것과우리가 건축과 생태 건축미래형 건축을 이해하는 방법이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형태라 습기도 올라오지 않아요.앞마당은 덥고나무가 심어진 뒤뜰은 서늘해서 신선한 바람이 생겨나지요재료만으로도 오묘해요친환경 재료를 사용하고 지붕에는 엄청난 흙이 들어가 기와를 받치고 있지요그러니 지붕 무게가 얼마나 무겁겠어요기와는 가끔 보수를 해줘야 하지요 불편하겠죠하지만 불편함으로 이해하지 말고 끊임없이 손을 대고 가꿔주는 ‘유기체 이해하는  어때요핸드폰처럼 문제 없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집이나 빌딩은 살아있는 유기체라는 .” 구만재 소장의 말처럼 인간이 환경과 공존하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한옥도 미래형 건축이다자연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직설적이지 않고   간접적이어야 한다는 건축과 건축 디자인생태건축과 미래형 건축의 미래다. 

 

종이로 건물을 짓는 시게루 (Shigeru ban)에게 화장지 디자인 요청이 들어왔다고 한다그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만들었는데결과는 평범한 두루마리 화장지가 아닌 네모 심지를 가진 모양새였다지금의 화장지는 지금도 충분히 편리해서 발전의 여지가 없고 네모 심지 화장지는 사용하기 불편하여 상용화될리 만무하다생각해보면동그라미처럼 제대로 돌지 않는 심지는 턱턱거리게  것이었다하지만 그것에 시게루 반의 의도가 숨어 있다그는 우리가 턱턱거리며 불편하기 짝이 없는 화장지를 쓰면서 이것을 만들기 위해 베어진 나무를필요 이상으로 낭비되는 화장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이것은 건축가가 생각할  있는 환경과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다그들이 환경에 접근할  있는 것과우리가 건축과 생태 건축미래형 건축을 이해하는 방법이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

<THE GALLERIA>

 

아타의 시간 

시간을 간증하는 시간이다마오의 목덜미가 위태롭고 먼로의 얼굴이 무너져 내리는 이변김아타의 작품은 존재를 역설하지만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흡수하는 시간들은 그를  거대하게 만든다. 

 

 

트럭 10 분량의 얼음을 1  창고에 실어 나르고누에가 뽕잎 먹는 것을 8시간 촬영하고 마오의 머리를 7 동안 녹이고 스님을 설득하기 위해  년의 시간을 준비한다그때 자른 머리는 이미 8 나는 이토록 숨이  사람을 대면할  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그리고 김아타의 시간은 정말이지 생각했던  이상이었다그의 시계가 미쳤거나 그에 적응할  없는 우리의 초조함이 미쳐갈  같았다. “시간이 나에게 부여하는  뭘까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은 뭘까그래서 훈련을 했지. 1미터 선을 그어 놓고 선을 따라 계속 움직여 1미터 끝에서 끝을 가는 거야. 10 안에 간다고 가정하고 1미터를 입력하고  보는 거지 훈련을 계속 하다 보면 나를 지배하는 모든 것이 시간이자 시간 관념이야. ‘10분은  정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끊임없이 해보면 어느 순간에 시간과 거리관념이 사라져버리지아주 많이 해서 한참 후에 찾아오는 거야그때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거지생각해 . 1시간, 60분을 10 마이너스 43제곱을 하면 클립톤이란 아주 작은 존재가 하지만 어쨌거나 시간은 물리적으로 나뉘는 거지하지만 우린 거기까지  나눠 한계와 인식체계까지 직접 매달리고 체험하고 처절한 시간을 보내봤지시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어단지 조금  자유로운 것뿐이야시간에서 자유로울  있는 방법은 ‘ 투더 퓨처’ 뿐이라고!” 녹음 시간만 2시간이  되는 인터뷰커피를  물을   마셨다아타의 시간 안에 빠져들어갈 김아타는 패덱스 직원이 깔고 앉아 뭉개져 버렸다는 안경과  같은 것이  세계를 뒤져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하지만 아타는  동그란 안경테를  년이 걸려서라도 찾아내고야  위인이다   

 

그는 한동안 전시 준비에 바빴다. “ 정신이 전시에  있어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어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세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번째 전시가  거야전시 즈음해 인간문화재와 인도 작업 스케치 뉴욕 스케치들과 도록까지 포함해 6권의 책도 나올 거고인간문화재를 촬영하던 이걸 책으로 엮어 내겠다고 했는데 그게 지금 실현됐네마오와 마릴린 먼로김아타의 얼굴이 녹아가는 과정을 촬영한 ‘ 에어 프로젝트   있을 거야. 1백개국, 1 명의 얼굴을 겹쳐  장의 사진으로 명이자  사람의 얼굴로 보여주는 것도 있지.” 그는 1백개 국가의 1 명의 얼굴을  장의 이미지로 만들고  외에 일본과 중국티벳한국 남녀 1 명을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다. “별의  사람들이  들어 있지앞으로 유럽에서 독일 남녀를 찍을 거야이건 여러 이미지를 켜를 쌓듯이 해서 하나의 이미지로 만드는 건데 명이 모이면 하나의 새로운 얼굴이 각자  분의 일이란 지분을 갖고 있는 거지완전히 새로운 얼굴이 나왔지하지만  사람  사람이  들어 있고사라진 것이 아니야. 2001년부터 하고 있는 ‘ 에어’ 시리즈는 ‘존재하는 것은 결국  사라진다 개념이야사라지는  움직이는 속도에 비례해  노출로 사라지게 하는 거지얼음이 녹는 것도 존재의 정의와 가치를 역설적을 확인하는 거지. 8시간 동안 촬영한 사진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하지만  사람들이 없어진  아니잖아나는 물질적으로 없애는  보여주는 거야. ‘어떻게 없애는가 사진적인 프로세스고어릴  이런  흔히들 하잖아. ‘없어 봐야 소중한  안다그거랑  같은 거야보이지 않게 해서 존재의 가치를 역설하는 거지.” 그의 ‘ 에어’ 시리즈는 2 5 만원에 낙찰되어 미국인들조차 놀라게 했었다너무도 유명한 미국의 사진작가 미즈락(Richard Misrach)보다 높은 가격이었다.  그리고 김아타는  유명해졌다. “돈을 벌었고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많은 스태프가 함께 일할  있게 됐지아직 변변찮은 집도 없지만 나중에는 사회에 환원도 하겠지부자가 되어 남는다면 나로서는  견딜 일이야커피를 커피잔에 마시거나 접시에 마시거나 물컵에 마시거나   있겠지담는 그릇이 예술인 셈이야잔이 어떻게 생겼는가는 프로세스와 같은 거고그냥  생각을 담는 도구에 불과해우린 사진이란 것에 너무 경도됐고 나의 살아온 본색은 달라지지 않아수용하고 그리고 받아들일 뿐이지.” 

 

1990년대에 아타는 인간문화재와 해체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었다김석중이란 이름으로  1989 인간문화재 김금화의 사진을 촬영한 즈음이다 유명하지 않았을 때도김아타는 김아타였고그의 시각은 한국이 아니라 동아시아세계와 지구를 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개념이 한국은 아니었어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도 나는 반대였지우리가  것을 보여주고 철학을 보여줄 곳이 있다면 최후의 프로페셔널한 공간이어야 했지 세계를 드러내려면 뉴욕이건 무엇이건 수용해야 했고그땐 한치 앞도 모르면서 그랬지사진을 시작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그랬어. 1989년인가 대학생들이 나를 인터뷰하러 왔는데 그때 ‘어패처(Aperture, 세계적인 권위를 가진 사진 전문 출판사)’ 대해 이야기하다 내가 그랬지. ‘내가 언젠가 거기 특집이  거다라고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으로라면 나도 역사가  거란 자신감이 있었지그리고 10 만에 어패처 특집(<The Museum Project>) 나왔잖아내가 그때 알고 있던 인간 개개인 자체가 매우 위대한 존재라는 거였어부다가 84 경을 남겼거든 생각엔 84 경이 아니라 지구상 인구가 68억이라면 68 개의 경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인간 개개인이 경전이야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수만큼 경전이 존재한다는  깨우쳤어.” 

 

그는 통도사 불상 앞에서 삭발을  알몸의 사람들을 유리박스에 넣고 찍은 ‘니르바나(Nirvana)’ 비난을 받은 적도 있었다설득하는 데는 꼬박 10년이 걸렸다고 했던 작업이다아타의 머리도 모델의 머리를 삭발하기 전에큰스님이 직접 삭발해주었다. “절에서 촬영했던 것이  말이 많았어순조롭지 않았고그건 몰래   있는 일도 아니야별의  이야기를  들어몰래 찍었다거나 오징어  조명으로 촬영을 했다는 근데 그건 충분한 대화를 거쳐서   있었던 거야. 10 걸려 대화하면서 선문답도 많이 하고 했어 스님과 나는 도반(함께 도를 닦는 )이야항상 대화를 촬영은 확답을 받기 전에 세팅을  해놓았어그리고 물었지. ‘순수가 어떤 색이냐그러자 스님이 ‘진광불휘(眞光不煇진짜 빛은 번쩍이지 않는다)’ 하는 거야나는 오랜 시간 작업을 통해 트레이닝하면서 순수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는  마디로 그걸 날려버리더라아무튼, ‘색을 보겠다고 하니까 보세요’ 하고 자연스럽게 촬영을 했어.” 

그의 작업은 오랜 시간 인내를 요하는 작업이자 깊이 생각하고   치밀한 계산에 따라 움직이는  같다아타도 후회라는 것을 하는 사람일까. “나는 그런 생각들을 다시 태어나도 오늘  시간이 되면 나는  인터뷰를 하고 있겠지우린 서로 인터뷰를 할까 말까 부터 시작해 질문지를 작성하고 과정을 거쳐 이렇게 만나고 있잖아 시간에 주어진 선택에 의해 사람들은 움직여만일 다시 태어나도 나는  인터뷰를 하고 있을 거야미래를 묻는다면 미리 생각하지 않아단지 내가 여기 있을 뿐이지 내일  할지 몰라어떤 작업을 할지도 모르고.” 아타는 그와 다른 것들을 존중한다인간문화재들로부터 무언가를 배울  있다는 마음으로 150명을 인터뷰한 것처럼그는 그와 다른 모든 이들을 존중한다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김아타에게는 불가능한), 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뜨게 하고 인터뷰를 해야 하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서로 베풀어주는 관계인 셈이다. 

 

 

공지 *2005~2017년 포트폴리오
14 2019년 : <ORDINARY>
13 2017년 : <매일경제> <MorningCalm>
12 2016년 : <매일경제> <뉴스제주>
11 2015년 : <Olive> <매일경제>
10 2014년 : <매일경제> <한살림>
9 2013년 : <매일경제>
8 2012년 : <아시아경제>
7 2011년 : <아시아경제>
6 2010년 : <THE GALLERIA>
5 2010년 : <THE GALLERIA>
> 2008-2009년 : <HAUTE> <THE GALLERIA>
3 2007년 : <AFEW>
2 2006년 : <AFEW>
1 2005년 : <FEATURE>